글쎄..나두 김이라니까....

자유게시판

글쎄..나두 김이라니까....

8 편지다발 5 4,293
엊그제의 좋지 않은 일로 인해 가라앉은 마음으로 향한 출근길.
오늘은 인천에 폭설이라 하여 열악한? 티코를 집에서 쉬게 한채 대중교통이라하는 전철을 탔다.

결혼한 지 두어 달 조금 넘은 기간...같이 산다라는 것이 죽이 잘 맞을 때는 그것처럼 좋은 것이 없는 거 같으면서도 어떤 상황으로 인해 어긋날 경우 상대방의 간섭 없이 혼자 사는 것이 속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이런 점이 그때그때 삶을 지혜롭게 풀어가지 못하는 나의 모난 점은 아닐런지....
여하튼 그런 씁쓸한 기분으로 전철을 타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발걸음은 어느새 쌓인 눈으로 인해 뽀드득 뽀드득
다소 경쾌해져 간다. ^^

전철역까지 가기 위해 잡은 택시가 기본 요금 거리 밖에 안 되는데도 세워준 것이 고마와 인사를 하고 개찰구에서
서투르게 티머니에 카드를 대고 플랫폼에 다 내려갈 즈음 몸을 못 싣고 이내 떠나가는  전철을 보며
'그런 거지 뭐..'라는 사소한 체념을 가져 본다.

인천역...
회사에 가려면 내려야 하는 역이름이자, 1호선 인천행의 종착역이기도 하다.
그러타고 오래 걸리는 거리는 아니다. 간석역에서 타서 15분 정도면 도착.
인천역의 전 정거장인 동인천역에서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전철 안에서 머리쪽으로 전철칸을 이동해간다.
(인천역은 개찰구가 머리 끝에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머리 칸으로 이동하자 어디서 마니 뵌 할아버지가 신문지를 줍고 계신다.
할아버지인즉, 현재 우리 회사에 가끔 들르시는 폐지 수집가이자 우리 신문사에 원로이시기도 한
前논설전문님이기도 하다.
전철안에서 인사를 하자 직계 부서가 아닌 나를 알아보시는 것인지, 모르시는 것인지헐헐 웃으시면서 인사를 받으며
내게 '당신도 환경미화원에서 왓수..?'라 하시는 것이  어르신의 죠크처럼 들려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잠시 후 전철이 도착하는 동안 할아버진 침묵을 주저하지 않으시고 당신은 신문지 가져가도
저렇게 이쁜 것들(전철 의자위에 놓인 오늘 아침 발행한 멀쩡한 새것)은 가져가지 않는다며시종일관 스마일을
굳히지 않고, 또 이어 '폐지를 한 자루 수집해 가면 5천원을 주는데, 어떤 노인들은 하루에 4~5자루씩 가져와서
받아가는 돈만 해도 꽤 된다. 가족들이 합세해 어느 역에서 만나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라 하시며,
뒤에서 내리려 하는 또 한 아줌마에게 '내가 좀 심한가여? 헐헐.....'

역에 도착한 전철을 내려 할아버지는 내게 인천신문사에 가는 길이다라 하시기에,
'제가 거기에 다닙니다. 어르신'이라 하니 '그러게..알구 있었어.. 어쨌든 같이 동행해서 오늘은 심심하지 않겠네..'

역에서 회사까지 도보로 10분거리. 하얗게 혹은 질퍽하게 덮힌 눈 길을 할아버지와 걸으며그분께선 내게 간단한
당신 소개와 우리 회사 간부들 이름을 거론하셨는데, 듣자하니 회사 간부 대부분이 할아버지 초,고등학교의 후배들이었다. 어쩐지 그래서 회사에 가끔 들르실때마다 간부들이 할아버지께 정중히 인사하구 그랬던 것.
매너리즘에 잠긴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간부들도 폐지를 수집하는 키가 작고 외소한 할아버지가 오시면
다들 너나 할 꺼 없이 어느새 정중해지는 걸 보면서 새삼 궁금했던 터.
그리고 할아버지가 전철까지 타서 크게 한 바퀴 배회해서 우리회사를 오시는 것도 오늘에야 안 것.
할아버지 어찌나 걸음이 빠르신지 활기차 보인다 했더니 내게 당신이 '얼마나 되 보이냐' 물으신다.
선뜻 대답하기 민망해 얼버무려 '일흔..? 아니 일흔이 아직 못되셨나..'했더니,
올해 연세 '일흔 일곱'이라 하시며, '어떠냐? 그런데도 아직 쌩쌩하지 않냐'라 하신다.

함께 걷다가 발자국이 극히 드문 좁은 길에 들어설즈음 할아버진 나더러 먼저 앞장서라 해서 난 앞장서고
그분은 뒤에서 나를 따라 오시는데, 왠지 그런 동행이 좋았다.
회사에 들어서던 중 할아버진 내게 이름까진 기억 못해도 '성은 뭐냐'란 질문에 '공씨에요. 할아버지' 하니까
할아버진 잘 못 들으셨는지 '김이야? 하필 왜 김이야..나두 김인데'라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다시 '아니요. 김이 아니라.. 공이라구요.. 공' 하니까 할아버진 또 '글쎄..나두 김이라니까....'
할아버진 끝내 내 성을 '김'으로 들으셨지만, 난 기분이 좋았다. 잘 못 들으셧지만 그러케라도
당신과 내가 같은 성(姓)을 가졌다 생각하셔서 인연이라 여기신다면 좋치 않겠는가. 

Author

Lv.8 8 편지다발  실버
40,970 (66.3%)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7 윤영이
캔가..아니어따요?
.
앞으로도 편지다발 계속 들을수 있지요? ㅎ 
24 ★쑤바™★
난...난....콩이오...emoticon_016 
10 아수라백작
난,,,난,,,,밥이오,,,emoticon_016 
22 KENWOOD
음,,,나두 김이오,,,emoticon_016 
24 명랑!
감동적인 명작수필입니다! 신문편집 하시나봐요. 저도 왕년에 연판에 문선해서 찍는 시절, CTS시절 까지 경험 했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해요~ (글은 이렇게 써야해...음음...) 
Banner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