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이 곧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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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산이 곧 부처...

5 독락[獨樂] 6 2,756
영월 사자산 법흥사 입니다.

대부분의 불전하면 떠오르는것이 법당 내부 정면 중앙에 모셔진 부처님 일 것 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사진에서 보여지는대로 휑하니 창문 하나만 뚤려 있을뿐 불상은 어느곳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불전의 구성양식을 적멸보궁, 혹은 보궁형 불전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즉, 불전 내부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 특이한 형식의 사찰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전의 신앙대상은 무엇일까요?

사실 석가세존은 살아있을당시부터 스스로를 종교화 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이야기 하였습니다. 세존이 살아계실때는 부처님의 말씀이 "교"이었고 부처님의 마음이 "선" 이었기에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그다지 중요치 않았습니다.

또한 세존 열반 이후에도 입과 입을 통해 부처의 말씀이 생생이 전해졌기 때문에 역시 특별한 대상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무불상 시대"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행승려가 아닌 일반 불자들에게는 그들의 마음을 다스릴수 있는 신앙과 참배의 대상이 필요 했고 그 대상으로 부처의 사리가 모셔진 탑(스투파)과 불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부처는 다비식을 통해 무려 여덟말의 사리를 수습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석가세존의 다비식을 거행했던 마투라족  인근의 여덟국가의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몰려와 세존의 사리를 나누어 줄것을 요청하였고 정확하게 8등분하여 각각의 국가에 세워진 스투파에 나누어 보관되게 됩니다.

훗날 그 유명한 "아쇼카 왕"이 인도를 통일하고 8곳에 흩어져 있던 사리를 스투파에서 모두 꺼내어 한곳에 모은 후 다시 8만개의 탑을 세워 나누어 보관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처의 사리를 통한 신앙을 "사리신앙" 이라고 합니다.

즉 부처의 살과 뼈과 활화한 "진신사리"야 말로 가장 분명한 신앙의 대상이었고 가장 큰 보물이었습니다.

이러한 부처의 진신사리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것은 자장율사에 의해서 입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당나라에 유학하며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100과"의 진신사리와 부처님의 머리카락을 얻어 귀국하여 황룡사9층탑과  통도사 금강계단 등지에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통도사 금강계단에만 진신사리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다른 문헌에 의하면 설악산 봉정암, 정선의 정암사, 오대산의 중대, 이곳 사자산 법흥사 등지에도 보관되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러한 사찰들에는 부처의 모습을 본따 만든 불상대신 부처의 현신인 사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 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곳 사자산 법흥사는 통도사 금강계단과 달리 적멸보궁 뒷 너른 산 어딘가에 묻어 놓았다는 전설만이 있을뿐 입니다. 실제 어디에 묻혀 있는지, 정말 묻혀있기는 한지는 아무도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그 종교적 특성상 기원시 부터 어떠한 대상에 의한 종교가 아닌, 부처의 말씀과 마음이 종교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전설이 사실이던, 아니던 간게 크게 중요한것은 아닙니다.

저 산 어딘가에 있을 부처의 현신, 아니 이 세상 모든곳에 부처의 마음과 말씀이 퍼져 있기에 구지 작은 한 부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 입니다.

때문에 이곳 법흥사의 적멸보궁은 온 산 전체를, 아니 이 세상 전부를 부처로 바라보고 있는것 입니다.

진정한 불교의 세계관을 표현한 건축물이라 할수 있습니다.

獨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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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5 5 독락[獨樂]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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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獨樂] http://www.cyworld.com/dokrak

Comments

G 짠지
제목을 보고 경주 남산인 줄 알았습니다.
문수보살이라...
조선 세조의 일화가 생각나네요.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하지 마라"는... 
11 일레인
emoticon_004 
9 자이
^^ 
10 ..........
음~ 
24 명랑!
그랬구마~~ 
13 거리
와 ~ 아..., emoticon_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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